공사감독병으로 2년… 건설사가 연봉 더 줬다

공사감독병으로 2년… 건설사가 연봉 더 줬다
[Story] 군 스펙, 그 어려운 걸 해냈습니다
노진형
노진형씨가 아이티 지진 참사 현장에서 입었던 파란 색 베레모의 UN 파병군 복장을 하고 서울 광화문 거리에 서서 손을 들어 경례하고 있다. 제대 후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참사의 현장에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 그 짧지만 강렬했던 6개월을 빼놓고 그의 20대를 설명할 수는 없다./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국방부 근무지원단에 복무 중인 윤홍신(21) 상병은 러시아어 특기병이다. 러시아어 통·번역이 주요 업무지만 일반 군사훈련과 유격, 혹한기 훈련 등도 똑같이 받는다. 고려대 노문과에 다니다 입대했다. 그는 “아홉살 때까지 카자흐스탄에 살며 익혔던 러시아어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통역병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제대 후 외교아카데미에 들어가 외교관이 되는 것이다.
군 복무 기간은 훌륭한 자기 계발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입대 전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써먹을’ 수 있는 분야에 근무하는 경우도 많다. 두산 그룹에 근무하는 노진형(27)씨는 2011년 아이티 대지진 참사 당시 파병 부대였던 ‘단비부대’ 3진으로 근무했던 시절을 요즘도 자주 떠올린다. 그는 “중장비 제작과 해외 인프라 건설 등도 회사의 주요 사업이기 때문에 지진 복구 현장에 중장비를 동원하고, 인프라 복구를 도운 경험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업체에선 군에서 네트워크 설비 업무를 해본 경험자들이 입사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자녀가 ‘암호병’으로 입대한 한 대기업 임원은 “전기전자과에 다니는 아들이 과 선배들을 통해 취직할 때 어떤 분야가 좋을지 물어보다 전공에 가까운 분야의 특기병으로 입대했다”고 말했다. 어려운 군 생활을 경험한 것 자체도 인생의 큰 자산이다. 2010년 레바논 동명부대에서 전산병으로 근무했던 김경호(33·가명·현대차 근무)씨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서 하루하루 문제를 해결하며 지낸 것은 돈 주고도 못할 경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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